제 고향 충남 연기군 전의면 다방1리 (사방골) 에 있는 천년고찰 비암사 입니다.
맨 앞에 삼층석탑과 그 뒤로 법당인 극락보전이 자리해 있습니다.
비암사 삼층석탑 꼭대기 에서는 국보 106호인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불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절의 창건연대는 명확치 않으나 이곳이 백제의 영역이었으며 백제 멸망이후 백제 호족이었던 전씨들이 역대 백제왕들과 호족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이 절에서 위령제를 지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백제의 사찰 이었던 것으로 사료되며 매년 이곳에서 백제대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암사 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원래 제 고향에서는 이 절을 '뱜절'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절에 얽힌 큰 구렁이와 관련된 전설 때문인데 큰 뱜(비암=뱀) 이 있던 절이라 하여 뱜절이라 불렀고 유사한 음가의 글자를 써서 비암사 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비암사의 비암은 뜻으로 해석하면 안되고 음으로만 즉, 향찰식으로 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암사는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서 임진왜란 전 까지만 해도 충청도에서 꽤나 규모가 있는 사찰 이었으나 왜란을 겪으며 일본놈들에 의해 많은 전각이 불타고 겨우 법당만 남았습니다. 현재의 극락보전이 있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 세심교 라는 다리를 건너면 좌측에 '남전' 이라는 들판이 있는데 파괴되기 전에 '남절' 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남절에 대해서는 해석이 두가지 입니다. 제가 어릴 때 어르신 들에게 들었던 바에 의하면 남자 중들만 지내는 절이라서 남(男)절 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런데 어딘가에는 본당 남쪽에 있는 절이라서 남(南)절이라 불렀다 하는걸 봤습니다만... 저는 우리 동네 옛날 어르신들 말씀이 더 신뢰가 갑니다. 왜냐하면 원래 비암사 본절은 비구니 스님들이 거처하던 절이므로 남자 스님들만 지내던 절을 특별히 남절 이라고 불렀으리라 봅니다. 남절이 있던 자리는 본당을 기준으로 남쪽이라기 보다는 동쪽에 가깝기 때문에 남쪽에 있는 절이라서 남절이라 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낮아 보입니다.
제가 어릴적만 해도 삼층석탑과 극락보전 그리고 뒤에 산신각만 있었는데 지금은 옆에 대웅전도 새로 들어서는 등 건물들이 늘어났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예전의 모습이 훨씬 고즈넉하고 아름다웠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릴적에 초등학교에서 툭하면 이 절로 소풍을 갔었죠. 오래된 느티나무도 있고 절 옆의 작은 개울에서 가재도 잡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었답니다.
인터넷에서 비암사를 쳐보니 운주산 비암사라고 나오는데 비암사가 있는 곳은 운주산과 30리나 떨어져 있는데 운주산 비암사라고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고 있더군요. 명확하게 말하건대 비암사는 운주산에 있지 않습니다.